◈ 아직도 알수 없는 아버지 마음 ◈
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
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
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
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
1학년 8반, 석차는 68/68, 꼴찌를 했다
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
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
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
당신(아버지)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
자식을 통해 풀고자 하셨는데,
꼴찌라니...
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
소작농을 하면서도
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
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.
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/68로 고쳐
아버지께 보여드렸다
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
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
못할 것으로 생각했다
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
친지들이 몰려와 "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"고 물었다.
"앞으로 봐야제..
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.."하셨다.
"명순(아버지)이는 자식 하나는 잘 두었으니
1등을 했으니 책거리를 해야제" 하셨다.
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
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.
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
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
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계셨다.
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
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
."아부지..." 하고 불렀지만
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.
그리고 달려 나갔다
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.
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
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,
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.
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
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
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.
세월이 흘려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,
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,
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
"어무이..,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..."
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..
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
" 알고 있었다.그만 해라. 민우(손자)가 듣는다."
고 하셨다,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,
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
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,
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,
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.
-전 경북대 총장 박찬석-
- 옮긴글 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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